묵상나눔
요한복음 19장 38절부터 40절 말씀에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장면을 묵상하며, 내 마음 깊은 곳의 부끄럽고 죄스러운 부분이 함께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누군가 그 시신을 가져다가 향유를 드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당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력자였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유력자라는 것은 단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세상적으로 잃을 것도 많은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서 결단하고, 자신이 제자임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그것은 큰 부담이었고, 깊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들처럼 사회적 지위나 명성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님의 사람임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나와 관계가 깊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비교적 쉽게 신앙을 드러내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 앞에서는 이를 숨기고 있다. 예배를 드리러 갈 때나 사역훈련에 참여할 때조차 다른 일이 있는 것처럼 둘러 말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이 불편하고, 이미 내뱉은 말을 후회하며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다시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에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지나치게 확신에 차서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던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그 경험이 나로 하여금 신앙을 드러내는 일에 조심스럽고 위축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의심 없이 믿고, 매일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에 깊이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혹시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굳이 말로 고백하지 않아도 삶으로 드러나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연약하고 죄를 짓는 존재이며, 그런 이유로 입술로 시인하는 일을 미루어 왔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이 모든 이유가 결국 핑계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온 마음과 온 삶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 사랑이 내 존재의 전부가 되었다면,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세상의 시선과 두려움을 넘어 제자임을 드러내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핑계 댈 수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격했다면, 삶의 자리에서 결단이 뒤따라야 한다. 나는 지인들에게 내가 사역훈련을 받고 있으며 그 안에서 어떤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 나누기로 결심한다. 또한 부모님께도 내가 일찍 집을 나서는 이유가 예배를 드리기 위함임을 솔직하게 말씀드릴 것이다.
이 작은 고백이 시작이 되어, 앞으로는 입술과 삶으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미미해 보이는 시작일지라도, 그 끝은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의미 있게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오늘 이 결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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