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석류 한쪽 같은 네 뺨
    2025-04-26 17:10:39
    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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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서는 예찬서다. 남자와 여자, 신랑과 신부, 그리고 사랑을 예찬한다.

     

    지난 새벽 기도회 아가서를 접하고, 레위기 읽을 때처럼 고난 아닌 고난이 올 뻔하였다. 나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하는데도 부지불식간에 스멀스멀 세상적 나가 기어 나오려고 하는 걸 억지로 누르고, 또 눌렀다.

     

    입맞추기’, ‘침상’, ‘내 품 가운데등 애정 행위를 연상할 수 있는 표현들이 거침없이 나열되고 있는데도 목사님께서는 흠칫하고 있는 나와 달리 물 흐르듯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을 얘기함에 있어, 짝 찾는 것을 두고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말을 우린 하곤 한다. 하나님께서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도록 동물이든, 식물이든 암수를 구별하셨기에 그렇다.

     

    아가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상대방에 대한 표현을 여러 자연을 비유하며 시각적인 은유를 담아 심미적으로 극대화하였다. 하나님의 표현법이렷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랑만큼 유혹적인 게 있었던가.

     

    거기엔 풋풋함도 있고, 애절함도 있고, 고귀함도 있고, 유치함도 있고, 가슴 시린 한 방향 사랑도 있고, 뜨거움도, 차가움도, 허무함도 있다.

     

    사랑으로 합체되기 위하여 갖는 여러 감정이거나 그 과정, 아니면 결과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걸 누가 터부시하랴.

     

    요즘 내가 꽂힌 찬송이 있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멀리한 채 세상 벼랑 끝에 선 나를 프로스데코마이하여 주시며 부름받도록 하고, 제자될 기회를 주시는 등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주셨다. 거기에 보냄받도록 하기 위하여 사역 훈련까지 받도록 하고 계신다. 조건 없는 무한사랑이다.

     

    석류 한쪽 같은 네 뺨의 표현의 아름다움과 함께 한없이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고마움을 다 표현할 길 없음에 죄스럽고, 죄스럽고, 또 죄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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