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역대상13:1-14 (편함과 쉬움 사이) + 세가지 감사
    2025-06-11 07:30:35
    박영모
    조회수   18

    역대기는 다윗과 함께한 용사들의 명단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전쟁사를 요약하고서는
    다윗의 첫번째 사역으로 언약궤를 옮기는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약궤는 성전의 중심입니다. 
    역대기의 관점에서는 가장 중요한 사역일 수 밖에 없습니다. 

    3절에 언약궤를 옮기는 이유가 나옵니다. 
    사울 때에는 언약궤 앞에서 묻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언약궤 앞에서 묻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겠다는 뜻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언약궤를 옮기면서 정작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
    뭇 백성의 눈에는 좋았으나(4) 하나님께서 이를 어떻게 여기시는지? 어떤 방법으로 옮겨야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언약궤를 다루는 방법을 명확히 규정합니다.  
    정결한 레위인이 옮겨야 하며 직접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지정된 고리에 막대를 연결해 레위인이 옮겨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방식으로 옮기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이 우상을 옮기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블레셋은 다곤 신을 옮길 때 새수레에 싣고 한번도 일을 하지 않은 소가 끌도록 했습니다.  
    과거 블레셋이 언약궤를 이스라엘 진영에 돌려줄 때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돌려 주었었지요. 

    결국 사단이 났습니다. 
    소들이 뛰어 언약궤가 떨어지려고 했고 웃사가 손을 대에 만졌다가 죽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헤쳤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는 그동안 웃사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웃사는 언약궤를 자주 보다보니 가볍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에게 익숙함은 편함을 넘어서 쉬움이 된 것이지요.  
    하나님을 쉽게 여기고 언약궤에 손을 대다 죽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성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전을 사모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뿐만 아니라 말씀에 합당하게 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성전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현대 사회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오며 수많은 권위를 해체했습니다. 
    신자들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온전한 거룩함과 온전한 순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이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순간순간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겸손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세가지 감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시니 감사 
    어제 한 청년을 길게 상담했습니다. 그 청년이 용기를 얻어 감사 
    역대기를 읽으며 한국교회에 대해 소망을 가지게 하시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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