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사사기 19:11-21 (그래도 이 정도는 하겠지) + 세가지 감사
    2026-10-08 06:57:01
    박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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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인 일행이 여부스 근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여부스는 예루살렘으로 훗날 다윗이 점령하여 이스라엘에 속하게 되지요.
    하지만 아직은 이방 땅이었습니다.  
    이방 성읍에서 밤을 유숙하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기에 동족의 성읍 베냐민 땅 기브아로  갑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기브아에 들어가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었으나 그들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대 시대에는 무역의 중심지인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여관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에 낯선 나그네가 마을 광장에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그를 영접했습니다. 
    나그네의 대접여부는 그 마을의 도적적 수준을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였지요. 

    하지만 기브아 주민들은 동족 에브라임 사람이 길거리에 있음에도 아무도 그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 나그네는 레위인 이었습니다. 
    앞선 17-18장에서 보았듯이 레위인은 제사장을 할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대접했던 부류였습니다. 
    그가 레위인인지 동족인지 알려질 기회조차 없습니다. 

    결국 밭에서 일하다 돌아오는 한 노인이 나서서 그들을 집으로 초청하는 데 그 역시 기브아의 베냐민 사람이 아닌 이주해 온 에브라임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시 베냐민지파의 도덕성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 1차독자들은 이부분을 읽으면서 혀를 찼을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 막장이네 막장"
    성경에서 나그네에 대한 불친절을 기준으로 그 도시의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들이 여럿있지요. 
    창세기의 소돔이 대표적입니다. 
    롯의 집에 방문한 천사 일행에게 폭력을 가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소돔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베냐민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은 나그네를 무시할만큼 타락했습니다. 

    우리에도 그런 기준같은 행동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래도 이 정도는 하겠지' 라고 기대하시는 데 그것마저 하지 않는 무엇. 
    그것이 무엇일까요?
    교회에서 새가족이 와도 아는 채도 하지 않는 것?
    옆집에 사는 사람과 몇년이 지나도 말도 섞지 않는 것?
    같은반 친구에게 필기노트를 보여주지 않는 것?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을 이기적 행동이라 보는 것...?

    인간이 인간에게 해야할 기본적인 존중의 태도가 하향 평준화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사회가 아래로 아래로 나려간다할찌라도 예수쟁이인 우리가 인간성의 마지노선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광교회가 환대의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로 오신 분들, 초신자들, 아픈 분들, 장애인, 돌싱, 혼자사는 분들, 외국인 근로자 분들이 환영받고 존중받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넓은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분이 계신지 돌아보겠습니다. 

    세가지 감사 
    환대의 윤리를 상기시켜 주시니 감사 
    올 해 새신자분들을 환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밥코니아, 남성 성도 일대일연결, 새가족 다락방 섬김 등을 할 수 있게 하심 감사
    어제 김애란 작가의 신작 "그랬다고 적었다"를 읽었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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